article | 보도자료

Veronica Bailey

April 24 - May 24, 2008

artist page

◎ 전시제목 : 베로니카 베일리 (Veronica Bailey) 展 – 2 Willow Road & Postscript
◎ 전시일정 : 2008.4.24(목) – 5.24(토)
◎ 전시장소 : 가인갤러리 ◎ 전시작품 : 사진 20 여 점



가인갤러리 이번 전시는 영국 출신 여성 사진작가 베로니카 베일리(Veronica Bailey, 1965, British)의 개인전입니다. 주목할만한 젊은 사진작가에게 수여되는 영국의 권위 있는 사진상 ‘저우드’(Jerwood Photography Award)의 제1회 수상자(2003년)로 선정된 이후 베일리는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크게 주목 받고 있는 떠오르는 사진작가입니다. 사진가로서의 이력이 늦은 만큼 그녀는 사진작가가 되기 이전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한 바 있으며 그러한 감각이 사진에 반영되는 편입니다.
베일리의 사진은 책이나 신문, 엽서와 같은 일상의 사물, 특히 ‘읽을 거리들(reading material)’을 본인만의 고유한 시점으로 화면 안에 포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국내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저우드’ 사진상을 수상한 그녀의 대표작 <2 Willow Road>(2003)와 후속작 <Postscript>(2005) 연작이 소개될 것입니다. 그녀의 사진들은 책이나 편지의 미세한 종이 질감까지 포착할 정도로 형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이 본래 지닌 기하학적인 형태(수직적 패턴)를 강조함으로써 추상적이고 비형상적으로 다가오며, 사진의 피사체인 책과 편지가 과거 특정인의 소유물인 까닭에 이미지 너머에는 풍부한 이야기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책 제목과 편지의 추신에 해당하는 작품의 개별 제목과 이미지를 대조해 가며 파악하는 가운데 보는 사람마다 얼마든지 상이한 해석을 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롭습니다.


<2 Willow Road>
<2 Willow Road>는 수직으로 세워진 책의 낱장들을 확대한 이미지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들은 책이 놓인 각도, 두께와 색이 대조되는 표지와 낱장의 조합, 종이들의 갈라진 지점과 벌어진 정도 등에 따라 미묘한 차이와 변화를 만들어내어 조금씩 다른 표정을 가집니다. 이 책들은 모두 근대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Ernö Goldfinger, 1902-1987)의 개인 서가에 꽂혀 있는 것들로 연작 전체의 제목인 ‘2 Willow Road’는 런던 햄스테드(Hamstead)에 위치한 – 국보로 지정된 - 골드핑거의 주택의 이름입니다. 베일리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며 그곳의 책들을 찍었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던 골드핑거는 1929년경부터 파리에서 수학하며 르 코르뷔지에나 만 레이 같은 파리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예술가인 우르슬라 블랙웰(Ursula Blackwell)과 결혼하여 1934년 영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햄스테드 지역에 근대건축 양식으로 3채의 ‘Willow Road’ 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2 Willow Road’에서 부인과 함께 살다 생을 마쳤습니다. <높은 빌딩에 대한 인간의 반응>, <예술 안에서의 여성>, <러시아 아방가드르드 예술>, <최고의 전쟁사진>, <헝가리 요리책>, <만 레이>, <본질적인 르 코르뷔지에> 등의 제목의 면면에서 골드핑거의 취향과 관심사, 나아가 삶의 궤적과 인간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Postscript>
베일리의 또 다른 주요 사진연작인 <Postscript> 는 <2 Willow Road>와 여러 면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만의 예술적 특징을 더욱 공고히 합니다. 개봉된 편지가 봉투 안에 들어있는 형상을 찍은 이 사진들은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접히고 벌어진 종이의 층들이 만들어내는 형태로 인해 전작과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추상의 인상을 주지만, 급하게 찢겨진 편지봉투의 파편과 낡은 종이의 질감, 글씨와 우표 등 보다 상세한 부분이 재현되어 형상적 이미지가 보다 강조됩니다.
이 편지들 대부분은 미국 출신 사진작가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초현실주의 예술가 롤란드 펜로즈(Roland Penrose, 1900-1984)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고 받은 것들입니다. 모델로 사진계에 입문한 밀러는 초상사진과 패션사진을 주로 찍다가 <보그>의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일하던 중, 전쟁 발발 후 종군기자로 참여하여 유럽의 중요한 격전지를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편지들은 주로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파리, 아테네, 카이로, 생 말로 등지에 머물던 밀러와 런던에 있는 펜로즈 사이에 오고 간 것들로 <잘 자요 내사랑>, <내 모든 사랑을>, <당신을 그리워하며>, <파리로 가는 중에>, <폭탄이 터지는 가운데> 등 그 제목으로부터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과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베일리는 동 서세스(East Sussex) 지역의 팔리 농장(Farley Farm)에 위치한 리 밀러 아카이브(The Lee Miller Archive)의 허가를 받아 그 곳에 보관된 편지들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삼았습니다. 이 사진들 대부분은 달콤한 제목과 파스텔 톤의 봉투 색깔, 그리고 전체적으로 안쪽이 보일 듯 말 듯 벌어져 있는 모습에서 에로틱한 은밀함을 줍니다. 그러나 이 역시 개인적인 감상일뿐 보는 사람 마다 다른 심상을 떠올리고 다른 인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베일리의 사진은 과거 누군가에게 속했던 특정한 사물을 통해 그 사람의 현존을 증명합니다. <2 Willow Road>의 책과 <Postscript>의 편지는 각각 골드핑거와 밀러라는 20세기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으로서 그 사람 개인뿐 아니라 주변 인물, 심지어 당시의 시대상황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작업은 항상 관계에 관한 것이다”는 베일리 자신의 말처럼 그녀의 사진은 외형적 아름다움 외에 엄청나게 풍부한 텍스트로서 가치를 갖습니다. 선적인 추상으로 인한 간결한 이미지 너머로 제목이 주는 암시와 함께 호기심을 끈을 놓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계와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베일리의 사진은 형상적인 것 너머 담론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사진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